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Oedipus Rex)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Oedipus Rex) - 운명과 자유의지

11월 03, 2022

운명이 그렇다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비극으로 꼽히는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

주인공 오이디푸스가 예언을 피하려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이야기다.

언뜻 보면 '운명은 피할 수 없다'는 교훈을 담은 것 같지만, 사실 이 희곡 속에는 운명을 마주하는 이의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넌지시 드러나 있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우리도 삶에서 불행을 마주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줄거리

배경 설화 : 오이디푸스 전설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 델포이 신전에서 앞으로 태어날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아들 오이디푸스가 태어나자, 그들은 이 불행한 운명을 피하기 위해 부하에게 갓난아이를 키테론 산에 버리도록 명령한다. 부하는 아이 발목을 쇠 꼬챙이에 꿰어 나무에 묶었다. '오이디푸스'는 상처 입은 발목을 뜻한다.

차마 어린 오이디푸스를 버려두기 어려웠던 부하는 이웃나라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아이를 맡긴다. 목동은 아이를 코린토스 왕인 폴리보스와 그의 아내 메로페에게 바친다. 둘은 오이디푸스를 양자로 받아들인다.

성년이 된 오이디푸스는 폴리보스가 친부가 아니라는 말을 듣는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신탁을 청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 대신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경고만 듣는다.

친부모를 코린토스의 왕과 왕비라 생각한 오이디푸스. 이 신탁을 피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방랑길에서 그는 마차를 탄 노인을 마주친다. 서로 길을 양보하라고 다툰 끝에 노인은 살해당한다. 그는 오이티푸스의 친부 라이오스 왕이었다.

자기 친부를 죽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오이디푸스. 테베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스핑크스를 죽이고 그 공로로 테베의 왕이 된다. 자신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해 두 아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 그리고 두 딸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까지 얻는다.

오이디푸스는 테베를 선정으로 잘 통치했으나, 갑자기 도시에 가뭄이 들고 역병이 창궐한다. 그는 이오카스테의 남동생인 크레온을 불러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으로 가서 역병의 원인을 알아 오게 한다. 신탁은 “선왕 라이오스왕을 죽인 자를 찾아 복수하면 역병이 물러간다”였다.

자신이 라이오스를 죽였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오이디푸스는 살해자를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수사 끝에 오이디푸스는 친부인 라이오스 왕을 죽인 자가 바로 자신이며, 자신의 아내 이오카스테가 바로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게 된다.

고대 그리스 희곡의 삼단일 법칙

행동의 단일성 : 하나의 연극은 단일한 사건을 다룬다
장소의 단일성 : 연극은 단일한 장소에서 이뤄진다
시간의 단일성 : 극 중 진행되는 시간은 하루를 넘길 수 없다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 줄거리

삼단일 법칙을 충족하기 위해, 오이디푸스 왕은 분석극 형식을 취한다. 분석극은 희곡의 전개 방식 중 하나로 결정적 사건을 극 말미에 가서 드러내는 방식이다. 왕이 된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의미를 깨닫게 과정, 그리고 이 절망적인 상황에 대응하는 모습을 조망한다.

극은 왕이 된 오이디푸스가 백성들로부터 테베에 닥친 재해에 대해 탄원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이디푸스는 역병의 원인을 알기 위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신탁을 구한다. “선왕을 죽인 자를 찾아 응징하면 역병이 물러간다.”는 답을 듣고는 살해자를 찾기 위해 수사를 시작한다.

그는 먼저 장님 점쟁이 티레시아스를 부른다. 그녀는 처음에는 대답을 거부하지만 오이디푸스의 독촉에 결국 그가 바로 그 자신이 찾고 있는 범인이며 이오카스테가 그의 아내이자 어머니라고 말한다.

왕비 이오카스테는 선왕 또한 아들에게 살해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지만, 노상강도에게 죽었다는 점을 들어 이를 깎아내린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이전에 자신이 주워온 자식이며 친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던 사실을 상기하고는 경악한다.

거리에서 시비 끝에 한 노인을 살해했었던 사실을 떠올리며, 선왕이 죽을 당시 그를 수행한 하인을 찾아오라 명한다. 그 때 오이디푸스에게 코린토스의 전령이 오이디푸스가 친부라 여긴 폴리보스 왕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오이디푸스는 이에 안도하지만, 그 전령이 실은 자신이 키테론 산에서 오이디푸스를 주워온 목동이라고 말한다. 이오카스테는 이쯤에서 수사를 중지하라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이를 거부하고 끝끝내 수사를 계속한다.

마침내 오이디푸스가 찾아오라 명한 하인이 도착했다. 하인은 그가 전왕의 소생이라는 것을 밝힌다.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는 이에 충격받아 목을 매달아 죽고, 오이디푸스는 그 옆에서 브로치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는 모든 직위를 내던지고 나라 밖으로 떠난다.

해석

결정론

해체의 시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제시한 이데아는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회의주의에 의해 기반을 잃고,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순수이성을 비판함으로써 무너진다.

게오르크 헤겔은 자기동일성이라는 실재의 존재 원리를 규명하면서 모든 것은 가변적이고 개념조차도 절대성을 갖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순수하고 단일하며 절대적인 의식이라는 고정관념을 해체한다.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논리철학논고에서 “말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 말하며 언어와 사고의 한계를 지적한다.

순수한 개념, 불멸의 영혼과 같은 개념이 사라지면서 데카르트가 이야기한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 또한 뉴턴의 과학혁명 이후 차츰 붕괴된다.

토마스 홉스가 '추론은 계산이다'라고 예언한 것처럼 70년대 실험심리학을 거쳐 사회학에서의 쌍둥이 연구, 의학에서의 간질환자 뇌 제거 실험과 같은 물리적 조작을 통해 우리는 순수하고 단일하며 불가사의한 영혼이 아니라 자극과 행동으로 연결된 현상으로 전락한다. 벤자민 리벳의 실험은 결정적이었다.

<그림> 리벳의 실험
피험자에게 손가락을 움직이게 했을 때, 피험자가 스스로 인식하는 의지에 앞서 준비전위(RPI, RPII)가 먼저 나타난다.

의식은 뇌 활동의 지시 주체가 아닌 잔상으로도 해석된다. 우리는 이제 마음이 아프면 호르몬을 조절하고 뇌를 다루는 약을 먹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되묻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인가?

실험적 규명의 한계

자유 의지는 비물질계의 개념을 지칭한다. 선택 가능성을 전제하고, 후행적으로 기능한다. 더불어 그 의미는 자유 의지 주체의 내적 속성이 아닌 외적 기능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ET나 토이스토리 속 장남감이 자유 의지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생물학적 구조에 관계없이 오로지 기능에 따라 유무를 판단하는 것이다.

반면, 실험적 방법은 후험적 결과로부터 출발해 원인을 도출한다. 실험적 규명은 물질계로 설명하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그 순간 자유 의지는 용어가 담은 지칭과 전제 등 내적 의미를 잃고 현상 만을 관찰하는 결정론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자유 의지의 기능적 속성으로 봐도 결정론은 한계를 갖는다. 미시 세계에서 원자는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존재할 수 있으며, 거시계에서 물체를 이룰 때는 수많은 원자들이 모여야 하기 때문에 통계적 성질이 큰 영향을 끼친다. 고전 물리학이 전제한 인과론의 세계는 한계를 갖는다.

인과론이 부정되므로, 후험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자유 의지의 유무를 검토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선택 시점에 다양한 여지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